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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자(內弟子)시대의   추억

趙 治勳

조치훈.일본기원 9단

6살 때 바둑수양을 위해 혼자 일본의 木谷道場(기타니 도장)에 갔다.

기타니도장에는 스승님,사모님,자제분,7분,그리고 안제자가10명정도 그외 외부제자가 10명정도 있었던걸로 기억한다.당연히 개인방은 없고 공부방이 침실로 변했다.

안제자는 일본전국에서 천재소년으로 불리는 소년들이였고 외부제자는 도쿄도내에 집이 있는 소년들이었다.안제자는 천재소년이 조건이였지만 외부제자는 수재정도였다.

나는 어른이 되어 입상도하고 어느정도 성공을 걷게되자 취재요청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취재기자들로부터 꼭 받는 질문이 6살때 홀로 일본에 와서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요?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했나요?등의 질문이다.나는 “오씽”과 같은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왠지 외로웠다,괴로웠다,억울했다등의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東京 四谷(도쿄 요츠야)에서의 생활은 10년에 이르렀다.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은加藤正夫(카토우마사오), 石田芳夫(이시다 요시오), 佐藤昌晴(사토우 마사하루), 久島国夫(히사지마 쿠니오), 小林光一(고바야시 코우이치), 였고 대천재 武宮씨가 빠진 것은 그의 집이 도쿄도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토우 마사하루씨는 스포츠맨으로 平塚(히라츠카)앞바다에서 그가 헤엄치는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였고 야구를 하면 에이스투수였다.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은 히사지마 쿠니오씨였다. 나는 히사지마씨가 에이스투수가 되기위해 많은 시간을 함께했는데 해가 지고도  야구볼이 보일때까지 그를 위해포수를 해주곤했다.그결과 가끔은 에이스투수로 등반하기도했다.

히사지마씨는참인품이 좋은 사람이였다.안제자는 천재가 조건이라 했지만 결코 그는 아니였던 것 같다. 그는 위장이 약해서 같은 한솥밥을 먹은 멤버중에서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안제자시절 카레요리가 밥상에 오르는날엔 위장이 약해서 카레를 먹을수 없어 밑반찬으로 나오는 일본 김치많으로 식사하곤했다. 나는 카레가요리가 좋아서 카레가 나오는 날이면 꼭 히사지마씨 옆에 자리를 잡고 일본 김치하고 카레를 바꿔먹곤 했다.고바야시시는 나보다 연상이였으나 입문순서는 후배였다. 안제자 사이는 나이순보다 입문순서가 서열이 되는 세계다.고바야시씨는 내가 선배격인데도 왠지 나를 졸개 취급을 햇다. 그와의 추억을 생각하니 그는 공부에 여념이 없던 모습만이 떠오른다.

가토씨는 성실과 신망이 가득찬 사람이였다. 스승님을 비롯한 모든 식구들의 신뢰를 늘 한몸에 받고 있었다. 끝으로 이시다 요시오씨는 가토씨와는 성격이 다른분이 였으나 나에게는 언제나 친절했고 좋은 추억들만 기억에 남는다.